[ET톡] 선언 말고 설계가 필요하다

가상자산 시장의 경쟁력은 선언이 아니라 설계에서 나온다.

이재명 대통령 당선인의 가상자산 관련 핵심 공약은 '현물 상장지수펀드(ETF) 추진'과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이다. 단순한 규제 완화가 아니다. 이는 가상자산을 제도권 금융으로 편입하고, 산업으로 육성하겠다는 정책 전환의 신호다. 디지털 자산을 투기성 자산의 변방에서 본류의 금융자산으로 끌어올리겠다는 선언이다.

특히 현물 ETF 도입은 개인 투자자뿐 아니라 연기금, 보험사 등 기관 투자자의 참여를 열어주는 문이다. 이는 시장의 유동성과 안정성을 동시에 끌어올릴 수 있는 핵심 장치다. 하지만 ETF는 말보다 설계가 앞서야 한다. 가격지수 산정 기준, 수탁업자의 자격 요건, 지정참가회사(AP)의 구조와 역할 등 생태계가 정교하게 갖춰져야만 시장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다.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 역시 마찬가지다. 단순히 발행만 허용한다고 해서 혁신이 일어나는 건 아니다. 충분한 요건을 갖춘 비은행권에도 문을 열고, 민간이 자율적으로 결제와 송금 시스템을 혁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블록체인 기반의 디지털 원화는 토큰 기반 금융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온라인 결제, 구독경제, 글로벌 송금, API 연동 서비스까지 확장될 수 있는 디지털 인프라의 허브다.

윤석열 전 대통령도 과거 대선에서 △디지털자산 기본법 △디지털산업진흥청 설립 △초기공개코인(ICO) 허용 등을 공약했지만, 대부분 실현되지 못했다. 당시 추진된 정책은 '투자자 보호'라는 이름 아래 규제 중심에 머물렀고, 생태계는 자라지 못했다. 선언은 있었지만, 설계는 없었다.


디지털자산은 화폐이자 결제 수단이자 금융상품이다. 이 복합적 성격을 제도화하려면, 단순한 규제 틀을 넘어 산업 육성 중심의 프레임 전환이 필수다. 시장의 가능성을 정책의 언어로만 소비할 것이 아니라, 실질적 작동 구조로 설계해야 한다.

편집국 디지털금융본부 박유민 기자
편집국 디지털금융본부 박유민 기자

박유민 기자 newmin@etnews.com